7년전인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안되지 않은 소설로 자주 회자 되었던 리차드 매서슨의 [I'm Legend]의 원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었다. (너무너무 어려워!) 그러다가 얼마전 이 소설의 영화판에 대한 뉴스를 인터넷에서 읽었는데 콘스탄틴의 감독 프랜시스 로렌스가 윌 스미스, 그리고 자니 뎁을 데리고 2007년 개봉을 목표로 영화 제작에 착수한단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을 읽다가 이 소설이 지난해에 번역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 얼렁 사서 읽어봐야지.

원서 커버
1956년 소설이다. 번역서 커버에도 나와 있듯이 전지구적인 질병으로 세상 사람 모두가 괴물이 되어버린 파격적인 설정은 조지 로메오의 좀비 연작을 비롯해서, 요즘 근래에도 많이 나오는 수많은 좀비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세계는 흡혈귀들의 천지가 되어 있고 홀로 남은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아내와 딸을 잃고 몇달째 자신을 노리는 흡혈귀들을 피해 은신처에서 칩거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소설은 어떠한 해답도 주지 않는다.
[나는 전설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한 어조로 일관한다. 주인공인 로버트 네빌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이다보니 어떤 대화가 나올 여지또한 없다. 네빌은 지독하게 자조적인 어조로 흡혈귀들의 세상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무덤덤히 이야기한다. 더 기가막힌 것은 어떠한 목적성이 없는 네빌의 삶의 루틴이다. 지구를 구원할 수 있는 백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무찌르면 모두가 사멸하는 최종 보스격의 숙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네빌이 무슨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가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네빌이 갈 수 있는 것은 흡혈귀들에게 치명적인 햇빛이 비치는 반나절 동안 갔다 올 수 있는 반경뿐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공포는 좁혀들어오는 페소의 공포가 아니다. 나를 휘어감는 장막을 뜯어내면 분명 장막 뒤에는 다른 무언가라도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있지 않는가. 오히려 소설이 말하는 공포는 한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과도 같은, 끝없는 무한함에 대한 공포다. 동서남북 어디로 가도 똑같은 것만 있는... 그렇기에 정작 어떤 발걸음도 내밀 수 없는 무력함과 고독에 대한 공포.
[나는 전설이다]를 읽노라면 로버트 네빌이 흡혈귀들에게 당하기 전에 미쳐 죽는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안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그가 고군분투하는 것은 흡혈귀들의 정체 규명이다. 마늘을 싫어하고, 말뚝을 박으면 죽고, 햇빛과 십자가, 거울에 약한 공포의 존재들을, 네빌은 어떻게든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길 열망한다. 그래서 그는 흡혈귀들의 시체를 끌고와 여러가지 실험을 하고 혈액을 현미경으로 분석하며 나름대로의 이론을 구축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생물학과 심리학을 아우르는 수많은 전문적인 설정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런 설정들에 대해 무지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네빌의 분투는 공허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의 많은 이론을 세우는 네빌. 그러나 그 중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결과를 갖고 어떤 반격의 여지를 가질 정도로 네빌이 튼실한 자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네빌은 그냥 광적인 집착처럼 흡혈귀 연구에 몰두한다. 그는 결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몰두할 것-고독감을 깨뜨려줄 무언가가 필요했던것 뿐이다. 이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강아지와 생존자인 루스와의 만남에서 극적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과정의 긴장감은 흡혈귀들을 샷건으로 쏘아대는 액션신 못지 않게 탄탄하다.
결말이 궁금하시다고? 일갈 말하자면 적어도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엔딩처럼 끝나지는 않는다. 모든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자신이 법이고 윤리의 기준이 되었던 로버트 네빌. 그가 소설의 제목처럼 진정한 '전설'이 되며 지독하게 잔인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두껍지 않은 분량. 여름에 읽어볼만 하다. 번역본의 절반은 매서슨의 단편들로 채워져 있다.
PS : 영화화가 두번 되었고, 그 중 유명한 것이 찰톤 헤스턴이 주연했던 [오메가 맨]이다. 주말의 명화에서도 했던 작품. 원작과는 거리가 많이 있는 작품이다.
한편 소설을 보고나니 2007년 개봉될 영화버젼의 캐스팅이 참 걱정된다. 어떻게 윌 스미스가 로버트 네빌에 적격자가 될 수 있을지? 로버트 네빌은 자조적인 독백과 고색창연한 클래식 음악, 그리고 위스키로 고독을 저울질하는 그늘진 전사다. 벨에어의 왕자 출신이었던 유쾌한 힙합퍼 윌 스미스의 이미지와는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고보니 윌 스미스는 역시 SF 걸작이었던 아시모프의 소설 [아이,로봇]의 영화판에서도 주연을 맡아서 원작의 이미지를 우장창 해체했었다. 운이 좋은거야.. 아님 SF 소설광인거야. 뭐야.
반면 벤 코트먼의 역을 맡았다는 조니 뎁은 그럭저럭 맘에 든다. 사실 벤 코트먼의 외양에 대한 소설 중의 묘사 - 네빌은 벤 코트먼이 '로렐과 하디 (미국판 키다리와 뚱뚱이 코메디쇼)'에 나오는 하디(뚱뚱이)를 닮았다고 말한다 -와는 거리가 있지만, 뎁의 외양도 나름대로 어울릴거 같다.
어쨌든 소설과 같은 분위기로 영화화 될리는 없겠지. 전형적인 헐리웃 블럭버스터로 둔갑할 것. 내기를 해도 좋다.